jyp与艺人签约多长时间 JYP王牌经纪人尹明善如何靠音乐创作逆转人生
在韩国,有位经纪人还身兼了作词作曲家的身份,在韩国乐坛创作出了许多脍炙人口的名曲,他是谁呢?下面我们就一起来看一下这位传奇人物的人生。
최근 직장인 소셜미디어 블라인드에서 직장인 22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투잡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중 37%가 '그렇다'라고 응답했습니다. 더 이상 평생직장의 개념은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고 이직과 투잡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요.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투잡의 개념은 일반적이지 않았는데요.
最近,职场人网络社区BLIND对2298位职场人为对象进行问卷调查的结果显示,回答“是否有身兼双职”的回答者中,有37%表示“是的”。现在,一辈子做一份工作的概念已经不再有意义了,跳槽和身兼两份工作成了十分自然的事情。
무려 18년 전 "투잡스족"을 소개하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 투잡스족의 대표로 소개된 주인공은 바로 매니저이면서 작곡가인 윤명선입니다. BTS의 아버지 방시혁이 시상식에서 "제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이 있다. 음악을 할 수 있게 프로 작곡가로 일할 수 있게 해주신 윤명선 형"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在18年前就有介绍“双职族”的报道。该报道中,双职族的代表主人公就是既是经纪人,又是作曲家的尹明善。BTS之父房时赫在颁奖典礼上说:“我想向一个人表达我的感激之情。他就是让我能够创作音乐,让我能够当一名专业作曲家的尹明善哥”,表达了感谢之情。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로 익숙한 윤명선은 사실 JYP 설립 초창기 박진영의 매니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윤명선 본인의 말 한 바에 따르면 아버지가 자유분방했던 탓에 어린 시절 할머니와 살았고 워낙 가난해서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 환경이 불우했음에도 부모님께 항상 감사한 것은 예술가로서 재능을 물려주셨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以创造出许多热门歌曲的作曲家闻名于世的尹明善事实上是作为JYP创立初期朴振英的经纪人开始社会生活的。通过采访,据尹明善本人的话来说,他因为父亲过于自由奔放,所以小时候和奶奶一起住,因为家境贫穷,所以很是彷徨过。虽然家境不好,但是他却总是对父母怀抱着感激之情,据说这是因为他们让他天生就带着成为艺术家的才能。
1987년 경기대 행정학과 2학년 재학 중에 등록금을 벌기 위해 MBC 신인가요제에 참가한 윤명선은 자작곡 '크리스탈'로 장려상을 수상하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해당 자작곡은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던 윤명선이 음악 하는 선배에게 빌린 기타로 이틀 만에 만들어 낸 것인데요. 이후 윤명선은 해군홍보단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제대로 음악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1987年在经济大学行政系2学年在学时,为了赚取学费参加了MBC《新人歌谣祭》的尹明善以自作曲《Crystal》获得了鼓励奖,和音乐结缘。该自作曲是对音乐毫无背景知识的尹明善用从作音乐的前辈处借来的吉他在2天里做出来的。之后,尹明善在海军宣传团中服役,越发亲近音乐了。
당시 윤명선은 해군홍보단에서 가수 김건모를 비롯해 추가열, 개그맨 김용만, 심현섭, 지석진 등과 함께 복무했고 각종 악기 전공자들 사이에서 수준 높은 음악을 접하며 진짜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외딴섬마을을 방문해 공연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 감동받는 음악에 대해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었지요.
当时尹明善在海军宣传团中和包括歌手金健模在内的秋加烈,笑星金勇万,沈贤硕,池硕镇一起服役,在各种乐器专攻人士中接触到高水准你的音乐,成了真正的音乐家。他去了孤岛,在上面表演,对人们喜欢的音乐和感动人心的音乐有了直接的感受。
음악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을 가지고 전역한 윤명선은 친형에게 6천만 원을 투자 받아 자작곡으로 가득 채운 자신의 앨범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앨범 발매 직전 가요계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고 '지금은 어떤 음반이 나와도 상대가 안 되겠다'라는 마음에 미련 없이 접었지요. 대신 꿈꾸던 가수 활동을 접은 그가 찾은 새로운 일은 월급 30만 원짜리 로드 매니저. 대학 3학년 시절 윤명선은 그렇게 연예계에 입문했습니다.
带着对音乐的自信和热情退役的尹明善从自己哥哥那里拿到6千万韩币的投资后就准备了一张全是自己创作歌曲的专辑。但是他在专辑发卖之前看到出现在韩国歌谣界的“徐太志和孩子们”觉得“现在不管出现什么唱片都不会是他们的对手”,所以就毫不犹豫地喊停了。结束了成为自己梦想的歌手活动后,他找到的新工作就是当月薪30万韩币的经纪人。大学3学年的时候,尹明善就那样进入了演艺圈。
가수 이주원을 시작으로 배우 장동건의 로드 매니저를 맡게 된 윤명선은 한 달에 30만 원을 받아 27만 원을 월세로 내면서도 맡은 연예인의 PR을 위해 홍보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방송사를 돌면서 지금은 단종된 한방음료 경옥고를 PD들의 책상 위에 올려둔 것인데요. 사이다가 한 병에 300원 하던 당시 경옥고는 무려 1100원이었고 특별한 홍보전략을 위해 윤명선은 아는 선배에게 목돈을 빌렸습니다.
尹明善担任过歌手李柱源到演员张东健的经纪人,当时每个月只有30万韩币工资的他花费了27万韩币当房租,为了自己的艺人的宣传毫不吝啬宣传费。每天早上到各个电视台转悠,把如今已经停售的中药饮料琼玉膏放到PD们的办公桌上。在雪碧一瓶要300韩币的当时,琼玉膏一瓶就要1100韩币,为了执行宣传战略,尹明善还从认识的前辈那里接了一大笔钱。
매일 새벽 6시 30분 방송국으로 출근해 경옥고를 돌리고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하던 매니저 윤경선은 금세 유명해졌습니다. 연예계와 방송국에는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경옥고매니저'이자 '일 잘하는 매니저'가 되었지요. 그리고 1994년 '날 떠나지마'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박진영이 그 소문을 듣고 윤명선에게 연락해 왔습니다.
他每天早上6点30分到广播公司打卡,给大家派琼玉膏,给所有人打招呼的经纪人尹明善一下子就出名了。他成了在演艺圈和广播界无人不知无人不晓的“琼玉膏经纪人”和“敬业的经纪人”。并且在1994年凭借《别离开我》跻身明星行列的朴振英听了这些传闻后联系了他。
JYP 설립 멤버가 된 윤명선은 박진영을 비롯해 이후 JYP 가수들의 매니저로 6년간 일했습니다. JYP 1호 가수 진주는 당시 다른 타이틀곡이 있었으나 매니저 윤명선의 강력한 주장으로 '난 괜찮아'를 타이틀곡으로 변경한 덕분에 대박이 났다고 전하기도 했는데요. 대박곡을 보는 눈이 탁월했던 그는 못다 한 음악의 한을 풀기 위해 직접 음반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成为JYP设立成员的尹明善担任了包括朴振英在内的JYP歌手们的经纪人,做了6年。据说JYP的1号歌手当时原本是定了其他的主打曲的,但是因为经纪人尹明善的强烈主张,最后将《我没事》定为主打曲而暴红。在挑选大爆歌曲方面十分有眼力的他为了纾解自己对音乐的心思而直接着手制作唱片。
하지만 1999년 윤명선이 제작한 가수 김사랑의 1, 2집 앨범이 연이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윤명선은 20억 빚만 남았습니다. 음악으로 쓴맛을 보고 쉬는 동안 설치미술가 장승효와 계약하면서 아트매니저로 활동하기도 했는데요. 가요계로 복귀한 윤명선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작곡 활동을 시작했고 2001년 심수봉의 '진실 그 사랑'부터 장나라의 '물망초', 보보의 '청혼' 등을 만들며 작곡가로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但是,1999年尹明善为歌手金莎朗制作的第1,2张专辑连着都没能大爆,所以尹明善背上了20亿韩币的债务。因为音乐尝到苦涩滋味的他在休息的期间还曾和装置美术家张圣浩签约,当过艺术家经纪人。回到歌谣界的尹明善再次回归初心,开始作曲活动,在2001年创作出沈洙奉的《真的那份爱》到张娜拉的《勿忘草》,BOBO的《求婚》等,稳固了他作为作曲家的地位。
그리고 2003년 드디어 '어머나'를 탄생시켰습니다. 길을 가다가 "어머나"하면서 넘어지는 여성 행인을 보고 영감을 얻은 윤명선은 작사, 작곡을 모두 합쳐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어머나'를 완성했는데요. "연말 작곡상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호언장담한 윤명선의 예상과 달리 가수들은 모두 이 곡을 거절했습니다. 덕분에 주현미, 송대관, 김혜연, 엄정화 등 무려 7명에게 퇴짜를 받은 곡의 최종 주인은 바로 신인가수 장윤정이 되었지요.
并且他在2003年还催生了《哎呀》。在路上走的时候,看到一位叫着“哎呀”的女行人获得灵感的尹明善在不到30分钟的时间内就完成了《哎呀》作词作曲。"年末的作曲家十拿九稳了",出乎对奖项势在必得的尹明善的医疗,几乎所有歌手都拒绝了这首歌。被周贤美,宋大关,金惠妍等足足7人拒绝了的歌曲最终的主人是当时的新人歌手张允贞。
윤명선이 호언장담 한대로 '어머나'는 그를 최고의 작곡가 자리에 올려놓았고 신인가수 장윤정을 단번에 트로트계 여신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 연말 KBS와 서울가요대상 작곡가상을 휩쓴 윤명선의 수상소감은 음악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데요.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너무나 노력하고 있는, 아니 고생하고 있는 매니저 여러분들께 이 상을 바치겠습니다"라며 매니저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소감을 대신했습니다.
正如尹明善的豪言壮语,《哎呀》让他成为最佳作曲家,让新人歌手张允贞一下子成为trot界的歌手。但是,2004年年末席卷了KBS和首尔歌谣大赏作曲家赏的尹明善的得奖感言并不是关于音乐方面的。他说:“我要把这个奖项送给在艰难的环境下,为了创作出好的音乐,十分努力,不,是十分辛苦的经纪人们”,用鼓励经纪人们的话语代替了获奖感言。
이때만 해도 여전히 윤명선은 스스로를 작곡가가 아닌 매니저로 소개했습니다. 본업은 매니저이고 작곡은 매니저로서 최고의 음반을 제작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지요. 그러면서 음악에 대한 전문적 지식보다 아티스트와 대중의 중간에 있는 매니저로서 양쪽이 원하는 바를 조화롭게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점을 자신의 장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直到这个时候,尹明善在介绍自己的时候还不是以经纪人的身份,而不是自居作曲家。他强调自己的本业是经纪人,作曲只是作为经纪人为了制作最棒的专辑使用的手段而已。他在介绍自己的时候表示,比起音乐方面的专业知识,他的优点是作为在艺人和大众之间的经纪人,能够具现出双方想要的东西。
이후에도 이승철의 '서쪽하늘', 이루의 '까만안경', 슈퍼주니어T의 '로꾸꺼'등 히트곡을 작곡한 윤명선은 지금까지 트로트와 가요를 넘나들며 작곡가로서 제작자로서 활동 중입니다. 지난 2017년에는 보다 특별한 인연을 맺은 가수의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무려 25년 만에 복귀했다는 해당 가수는 바로 윤명선의 아내이자 가수인 정혜선입니다.
之后,他还创作出李圣哲的《西边的天空》,Eru的《黑色眼镜》,SJ—T的《Rokkugo》等热门歌曲,在trot和歌谣之间来回,作为创作者活动。在2017年还为结下了特别缘分的歌手制作了专辑。她就是时隔25年才回归韩国乐坛,尹明善的妻子,歌手郑惠善。
로드매니저 시절 경옥고를 돌리며 열심히 활동한 윤명선의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당시 여자친구였던 정혜선이었습니다. 정혜선의 음악적 천재성을 알아본 윤명선은 빨리 돈을 벌어 앨범을 내주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일했는데요. 실제로 정혜선은 19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나의하늘'이라는 곡으로 은상을 수상한 후 음반을 발매한 가수입니다. 당시 가요계에서 정혜선은 천재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했고 완성된 2집 앨범은 제작자인 사진작가 김중만의 사정으로 인해 정식 발매조차 하지 못했지만 수록곡 '꿈속의 꿈'이 네티즌들 사이에 "죽기 전에 들어야 할 우리 음악 100곡"으로 선정될 정도였습니다.
当经纪人的时候到处送琼玉膏,认真活动的尹明善的原动力之一就是当时的女朋友郑惠善。发现了郑惠善在音乐方面的天赋,尹明善心情急切,想快点借钱给她出专辑。实际上,郑惠善在1989年第1届刘载河音乐竞赛大会赏以《我的天空》一曲获得银奖后发卖了专辑。当时在歌谣界,郑惠善以天才的歌手兼作曲作词家闻名,她完成的第2张专辑因为制作者摄影作家金钟万的缘故没办法正式发售,但是其中的收录曲《梦中之梦》被网民选为《死前必听的100首歌曲》。
1998년 결혼에 골인한 동갑내기 윤명선과 정혜선은 음악적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다만 육아에 집중하다 보니 정혜선의 음악 활동은 점차 미뤄졌고 그렇게 지낸 공백기가 무려 25년이 되었지요. 그리고 2017년 드디어 발매하지 못했던 2집 앨범을 리메이크 형식으로 재발매했고 2018년에는 3집 앨범까지 내놓았습니다. 제작자는 물론 남편이자 최고의 제작자인 윤명선입니다.
尹明善河郑惠善同龄,他们在1998年结婚,作为音乐方面的合作伙伴和人生伴侣相互扶持着彼此。但是因为集中精力育儿,所以郑惠善的音乐活动逐渐被推迟,就那样度过了25年的空白期。她在2017年终于以重新制作的方式将之前没办法发售的第2张专辑重新发售了,在2018年甚至还推出了第3张专辑。制作者当然就是身为她的丈夫也是最佳制作者的尹明善了。
윤명선은 최근 송가인의 '무명배우'와 '엄마아리랑' 그리고 유산슬의 '이별의 버스정류장'의 작곡가로서 각종 예능에 얼굴을 비추면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음악적 기술보다는 인생의 경험에서 곡이 나온다는 윤명선에게 가요와 트로트, 매니지먼트와 작곡, 제작자와 예능인 등의 경계는 무의미한 것 아닐까요?
尹明善近来作为宋佳人《无名演员》和《妈妈阿里郎》还有刘三丝的《离别的公车站》的作曲家在各种综艺节目的节目中露脸,给观众带来了欢笑。对于比起音乐的技术,歌曲中更多满载了人生经验的尹明善来说,歌谣和trot,经营和作曲,制作者和综艺人等的界限已经是没有意义的了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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